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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품에 안기신 고 이성봉 목사님의 뜻을 이어받아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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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죽도록 충성하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목사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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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오늘날 너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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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님께 바친 몸 그의 능력의 손에 붙잡혀 신앙생활 사십 년간에 부흥 사명이 임한 지 이십삼 년 동안 한국 각지로, 일본으로, 만주 등지로 전도 여행하며 지난 자취를 회고해 보면 신기하고 오묘하신 주님의 섭리와 경륜을 다 측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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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설교의 수사학(이성봉 목사의 부흥설교에 대한 수사학적 조명과 분석) – 정인교 교수/서울신학대학교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1-21 11:55
조회
8
이성봉 설교의 수사학

이성봉 목사의 부흥설교에 대한 수사학적 조명과 분석

 

 

정인교(서울 신학대학교 교수, 설교학)

 

 

 
  1. 들어가는 말
 

박우수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전파매체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해 또다시 수사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촌 시대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넘쳐나는 인간의 복잡성과 논쟁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것인 만큼 설득을 목표로 하는 수사학의 필요성이 오늘만큼 절실한 때가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설교의 영역에 있어 어거스틴에 의해 본격적으로 접맥된 수사학의 요청은 많은 논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설교 역시 일종의 종교적 담화(religiöse Rede) 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당위이며 특별히 일방적인 선포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의 강단을 위해서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당위성의 맥락에서 우리는 한국의 무디로 불리웠던 이 성봉 목사의 부흥 설교를 수사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해 보려고 한다. 이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분인 이 성봉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설교를 연구함으로 그 분을 기린다는 연대기적 중요성과 더불어 그의 설교를 수사학적인 틀에서 분석함을 통해 어떤 요인들이 성공적 전달적 설교를 가능하게 했는가를 파악함으로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귀감으로 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먼저 연구의 틀로서의 수사학에 대한 이해 및 설교와 수사학의 역사적 관계를 기초 작업으로 진행할 것이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이 성봉 목사의 부흥설교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수사학적 개념망을 기준으로 분석해 나가도록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그의 설교를 모은 설교집과 그의 육성 설교를 녹음 테이프를 연구 자료로 이용할 것이다.

물론 본 연구는 수사학적인 틀이 평가의 기준이 됨으로 마치 그 기준들이 완벽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고 또한 수사학이 주로 주목하는 일반 연설과 설교와의 차이가 간과되는 위험성이 적지않은게 사실이며 동시에 설교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이 연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1. 연구의 틀로서의 수사학에 관한 이해
  2. 1 수사학의 성격과 개념망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흐름속에서 수사학에 대한 이해는 시대와 인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수사학 정의는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 주후 30-100)가 내린 ‘말을 잘하는 학문’(bene dicendi scientia)이라는 규정에 바탕을 둔 ’담화의 기술‘로 받아들여져 왔다.

말을 잘하려 하는 이유는 남을 이해시키고 행동하게 만들고 믿게 하기 위해 즉 설득을 위해서인데,

설득한다는 말은 감정적인 수단과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 상대방에게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타인에 대한 행위의 수단으로서의 설득은 물리적 육체적 힘과 근본적인 대립관계에 있다. 설득은 청중에 대한 말하는 이의 각별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며 청중이 자유로이 거부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담론을 얻어내려는 것이기도 하다. 초기 수사학은 다수의 청중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 또는 담론을 통해 어떤 주장이 받아들이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설득의 기술로 정의되어온 수사학이란 말이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던 사회의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크게 보면 수사학은 문체들에 대한 연구로 국한되며 텍스트를 문학적인 것으로 만드는 어떤 것에 대한 연구를 지향하는 문체의 수사학과 설득하고 논증하는기술을 의미하는 논증의 수사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양자는 사회적 성격과 문화적 차원을 그 속에 내포하기 마련이다. 즉 제도적 틀 내부에서 인간들의 태도 관계 입장들의 역학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사학은 그것을 준수하는가의 여부가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관습 픙속 법칙 규범들의 세계속에서 유통되는 말의 의미와 양상을 따진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동시에 수사학이 지향하는 사회적 실천은 인간 집단들을 집결시키고 역동화시키는 상징적 가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을 때에만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문화적 차원을 지닌다.

수사학의 초기 단계를 이루는 고대 수사학을 보면 수사학은 당시의 사회적 필요로 맞물리어 세가지 종류의 담화에 대한 기술적 바탕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법정에서 상대방을 고발하거나 자신을 변호하는데 목적이 있는 재판적 장르(genre judiciare), 정치적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충고를 주는데 목적이 있는 정치적 장르(genre deliberatif) 그리고 대중앞에서 찬사를 하는데 목적이 있는 과시적 장르(genre epidictique)가 그것이다. 이 세가지 담화는 그 목적의 상이성 만큼이나 기술적인 접근도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가령 재판담화는 생략삼단논법, 정치담화는 예증법 그리고 종교적 담화를 그 내용으로 하는 과시적 담화는 과장(amplication)을 주된 기법으로 갖는다.

 

프랑스의 유명한 수사학자로 전통수사학의 역사와 개념망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한 바 있는 롤랑 바르트의 구분에 의하면 수사학은 기술로서의 수사학, 교육으로서의 수사학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수사학이라는 다양한 제도적 층위를 갖고 있다. 기술로서의 수사학은 설득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게 해주는 기술 즉 규칙들과 비법들의 총체를 뜻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재능에 의한 것이냐 훈련에 의한 것이냐의 문제 즉 자연과 기술의(소피스트들) 대립으로 수사학의 윤리성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교육으로서의 수사학이란 처음 수사학자라는 개인적 인맥에의해 전수되어온 수사술이 교육제도 속으로 편입되어 중세때 3학문 또는 7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그 이후에도 서구 교육의 한 자리를 차지해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학문으로서의 수사학은 대상언어에 대한 일종의 메타언어로 기능함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우리가 말하는 통상적인 수사학이 여기에 속한다.

 

앞에서 퀸틀리아누스의 견해처럼 수사학이 말 잘하는 기술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때 수사술로서의 수사학을 구성하는 개념망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수사학의 전거를 이룬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기본 개념망으로 5가지의 수사적 기술을 제시하는데 그것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1. 논거발견술(inventio) – 설득에 필요한 논거들의 수립에 관련된 기술로 변론가 스스로가 독창적인 논거들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논거들을 재발견하고 재활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환원하면 주제를 이해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자기의 생각을 모은 일로 주제를 발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찾아야 하는데 논거에는 예증법과 생략 삼단 논법이 있다
 
  1. 논거배열술(dispositio) – 이는 논거들을 어떤 순서에 의거하여 배열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우리가 흔히 초안(plan)이라 부름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즉 자신이 생각한 것을 순서있게 나열하여 초안을 짜는 일로 주제들의 자료들을 순서있게 정돈하는 단계이다. 이것의 기능은 가르치고 감동시키고 즐겁게 하는데(ut doceat, moveat, delectet) 있다.
 

iii. 표현술(elocutio) – 이는 문장의 차원에서 논증들을 언어화하는 작업 또는 그와 관련된 기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발견되고 배열된 논증이나 논거들의 골격에 살을 붙이고 보다 명료하고 생생하게 구체화시키는 기술로 우리가 흔히 문체(style) 혹은 문채(figure)라 부르는 것은 표현술의 한 양상 혹은 기술 의미하는 것이다. 표현술은 미사여구법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일종의 담화의 문체화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고상한 문체와 단순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 그리고 일화와 유머를 대신하는 절도있는(중간정도의) 문체가 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고상한 문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문체를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절도있는 문체를 선택한다.

 
  1. 기억술(memoria) – 이상과 같이 작성된 담론을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그 프로그램을 보다 효과적으로 기억해 두는데 필요한 기술을 의미한다. 이는 표현법과 구술문화의 연관성을 시사해주며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이동되었을 때 제일 먼저 퇴색해 버린 기술이다.
  2. 연기술(actio) – 이는 변론가에 의한 전반적인 담론의 연출에 관계되며 변론가가 취해야할 동작이나 목소리 억양등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담고 있다. 위대한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는 변론가의 첫 번째 자질도 두 번째 세 번째 자질도 모두 연기술이라 주장할 만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이상의 요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일종의 유기체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들 요소중 수사학 발전에 자양분 역할 한 것은 논거 발견술, 논거 배열술 그리고 표현술이다. 기억술과 연기술은 문화중심축이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이동했을 때 그리고 수사학이 말해진 담론이 아닌 씌어진 작품을 그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정한 이상의 수사학 개념망은 이 성봉 목사의 설교를 수사학적으로 조명해 보려는 본 연구의 중심축이다. 비록 수사학 영역에서는 연기술이 쇠퇴하였지만 설교의 영역에서 언어적 비언어적 요인은 설교내용의 전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심적인 평가와 분석 기준이다.

 

 
  1. 2 수사학의 역사적 변천과 흐름
 

수사학이 언제 어떤 이유로 생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쉽지않다. 왜냐하면 오늘날 ‘수사학’이라고 이름붙인 서구 중심의 수사학이외에도 지구상의 각 민족들과 역사의 단위마다에는 그 나름대로의 수사술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편만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체계로 발전해 온 것은 서구의 수사학이 유일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수사학의 범주를 서구로 한정할 경우 그것의 생성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일치되게 나타나고 있다.

수사학의 역사서술과 관련하여 설득력을 얻는 것 가운데 하나가 유기체적 모델인데, 수사학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밟아간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수사학의 시기를 수사학의 탄생-고르기아스(문학으로서의 산문)-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신수사학-3학문(중세)-수사학의 사멸등 7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수사학의 탄생과 아리스토 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의 수사학 그리고 고전수사학으로 줄여서 살펴볼 것이다.

 
  1. 수사학의 기원과 관련하여 롤랑 바르트가 작성한 ‘옛날의 수사학’이라는 논문은 잘 정돈된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수사학은 소유권 분쟁에서 생겨났다 기원전 485년경 두명의 시칠리아 폭군인 겔론과 히에론은 시라큐즈(Syracuse)에 사람이 살도록 만들고 용병들의 몫으로 나누어주기 위해 강제이주와 인구이동과 토지수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민주주의의 봉기에 의해 전복되었을 때 그래서 원래 상태로 사람들이 복귀하고자 했을 때 토지소유권이 모호해 졌기 때문에 많은 소송들이 발생하였다 이런 소송들은 새로운 유형의 것이 되었다 즉 이 소송엔 저명한 민간 배심원들이 동원되었는데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그들 앞에서 화술이 능란할 필요가 있었다 이 웅변술은 동시에 민주적이고 선동적인 성격 재판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급속히 교육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이 새로운 학파의 초기 선생들로는 아그리젠토의 엠페도클레스, 코락스 티시아스가 있다 시라큐즈와 아테네에서 공동으로 권익을 변호하던 상인들의 분쟁덕분에 아티카에서도(페르시아 전쟁이후) 이 교육은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1.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그리이스 수사학과 라틴 수사학을 포괄하는 고대수사학의 단계로 이 시기를 관통하는 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이미 수사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고 수사적 실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언어 행위의 중요성이 일반적으로 널리 용인되고 있었지만 이런 실천을 이론화 시키고 거기에 체계를 불어넣은 이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수사학에 있어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미에 관해 르볼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여러 다양한 시기들을 통해서 수사학이 여러 부분중 하나로 환원되기도 하고 어떠한 부분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조명되기는 하였으나 아리스-가 규정한 바 수사학의 체계 자체가 부정된 적은 없었다. 즉 오늘날 영화나 무의식에 대해 수사학을 언급할 때에도 우리가 참조하는 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적 체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수사학의 역사는 그 시작과 더불어 끝난다”.

 

그의 목표는 플라톤의 수사학 비판과 소피스트들의 수사적 실천이라는 양극단으로부터 수사학을 구해 냄으로서 이른 바 중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즉 플라톤과는 반대 입장에 서서 수사학이란 단지 말의 치장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논리학과 쌍벽을 이루는 사고의 학문임을 주장하는 한편 소피스트 수사학이 인간의 정서를 유발시키는데 초점을 두는 것에 반대하여 수사학의 논리성을 강조하면서 지적인 반응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소피스트들이 청중들의 감정이나 정념 즉 파토스를 자의적으로 불러일으켜서 사실을 왜곡하는 경향에 대한 일종의 반박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론 위에 정초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비도덕적인 것을 설득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수사학적 윤리를 주장하였는데 이를 위해 그는 변론가가 선한 성품을 지녀야 하며 완벽한 변론가가 되려면 타고난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퀸틸리아누스도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수사학은 그것을 실천하는 자가 정직한 인간 미덕을 갖춘 이상적인 인간일 때에만 그 이상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가 수사학을 가리켜 말 잘하는 기술이라 했을 때 ‘잘한다’는 표현속에는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피스트들에 의해 개인적인 기술로 경도되면서 진실의 추구가 아닌 비굴한 술책위조 속임수등으로 사용된, 진리의 적인 기교적 산문술(logographie)로 낮게 평가되었던 수사학은 한 단계 향상된 지위를 보장받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헬라시대 수사학의 특징은 문체와 연설의 기교에 대한 관심의 고조, 모든 주제들을 이론적으로 토의할 수 있는 교실에서의 심의를 위한 수사학(liberative rhetoric)그리고 교육을 위한 강의 및 대중 연설을 위한 낭독이라(declamation)불리우는 연설형태가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즉 수사학이 본래의 정치적이며 비평적 특성을 잃는 대신 문화를 위한 자리매김되어졌다. 수사학은 고상한 것들로 여겨졌던 덕들과 가치들 즉 고전시대를 이상화하고 그 시대의 문체를 모방함으로서 그 시대의 기원을 축하했던 에토스를 변호하고 표명하고 그리고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어졌다. 소위 수사학의 제 2의 궤변기( the second sophistic)가 도래했던 것이다.

헬라학교는 3개 등급으로 나뉘어지는데 초등교육은 페이데스(paides: 아이들, 14세까지의 소년 소녀들)에게 행해졌다. 교과과정은 독서 작문 문화 셈본 음악 그리고 신체운동으로 구성되었다. 중등교육은 에페보이( epheboi, 15-17살까지의 젊은 남녀)에게 제공되었는데 문화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문학 수학 과학에 교과목이집중되었다. 주전 1세기에서 주후 1세기간의 수사학은 바로 이런 교육의 차원에서 소개되어졌다. 고등교육은 18세부터 시작하였으며 능력있는 젊은이들은 전문학교에 진학했는데 이때 수사학을 위한 학교들은 더 폭넓은 직업을 위한 훈련을 제공했다. 수사학은 그레코-로망 시대문화에서 살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담화기술을 규정했다 연설은 헬라문화의 존재를 알려주는 표식으로 주로 시장 체육관 극장등 공공시설에서 행해졌다. 이 시대 사람들은 교육의 유무에 상관없이 열띤 토론에 익숙해 졌다.

 

한편 로마 시대에는 로마 공화정이 발달하고 안정됨에 따라 수사학은 로마교육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졌다. 즉 군중집회의 광장에서 밀려나 법정의 변론이나 교실안에서 학생들의 재치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iii. 마지막으로 살펴볼 고전 수사학은 고전 수사학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7세기 이후부터 수사학이 공식교육에서 사라진 해인 1885년을 기점으로 한 19세기 후반에 이른 긴 시기를 말한다.

역사의 길이에 비해 이시기는 이론의 독창성과 다양성 수사학 문헌의 양과 질 측면에서 덜 생산적인 시기로 평가된다. 또 이전 시대에 비해 교육과 학문에서 그 역할이 감소되었으며 더우기 기독교의 해석학과 겹치면서 그것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육측면에서 수사학은 3학문(수사학 문법 논리학)이나 7학문(3학문 +음악 산술 기하학 천문학(또는 의학)의 한 부분으로 제시되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문법과 논리학의 틈바구니에서 일종의 주변부로 밀려난 운명에 다름아니었다.

중세의 수사학은 규칙들의 세가지 표준들 세가지 기예들(artes)로 나타나고 있다: 1) 설교기예(Atres sermocinandi):이것은 대체로 변론술(엄밀한 의미에서의 수사학의 대상임)에 해당하며 그 당시엔 주로 (덕을 권고하는) 설교나 교훈적인 담론이었다 설교는 두가지 언어로 쓰일 수 있었는데 토속어로 쓰인(소교구 주민들을 위한) 일반인을 위한 설교(sermones ad populum)와 라틴어로 쓰인(종교회의나 학교나 수도원 사람들을 위한) 성직자들을 위한 설교(sermones ad clerum)가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라틴어로 준비되었으며 토속어로 된 것은 단지 번역에 의한 것이엇다

2) 구술기예(Artes dictandi, ars dictaminis), 서한문 작성술: 샤를마뉴대제 시대부터 행정이 확대되면서 공문서 작성술 즉 딕탁멘(dictamen/편지를 받아쓰게 하는 것과 관련됨)이 생겨났다. 문서작성자(dictator)는 공인된 직업인이었으며 교육도 받았다. 교황청 재판소의 문서 작성술이 모범이 되었으며 로마식 문체가 모든 것 위에 우의로 놓여졌다.

3) 작시술(Artes poeticae):시는 처음엔 문서 작성술의 부분에 속했다. 그후 작시술은 리듬을 취하고 문법에서 라틴어 시를 차용하고 또한 상상력의 문학을 지향했다

 

고대의 재발견에 대한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 시기(1350-1600년)에 이르러 수사학은 중세에 비해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주목 역시 본질적인 부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사학은 시학에 종속된채 일종의 ‘시작법’(詩作法)으로 간주되어졌다. 주로 발음이나 운율등 운문 형식을 다루는 분야를 ‘제2 수사학’으로 불렀는가 하면 16세기 프랑스 수사학 개론서들은 주로 표현술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즉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수사학은 문체나 문채(figure)를 그 대상으로 삼는 이른바 ‘표현술’로 줄어든 인상을 준다.

수사학 쇠퇴는 19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 되는데 객관성을 내세우는 실증주의와 독창성을 내세우는 낭만주의에 의해 수사학이 철저히 거부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1885년 수사학은 프랑스 교육 프로그램에서 사라졌고 그것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도 미미하게 연명할 뿐이었다. 이제 수사학은 모든 담론의 기술이 아니라 논리적인 담론의 기술로만 간주된다. 즉 수사학이란 낭만주의가 추구하려 했던 낭만적 감정이나 정념들을 고려할 수 없는 기술로 치부된 것이다.

이런 동면기에서 수사학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이후이다. 대중 사회가 출현하고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는가 하면 이데올로기 및 권위주의의 쇠퇴는 수사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토양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이 부활은 고대 수사학에서 자기의 고유한 대상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발견했던 이론들도 큰 역할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기호론이다. 이것은 사물들이 무엇인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사물들 속에서 수사학을 찾는다.

 

III. 수사학과 설교의 관계 그 역사적 고찰

 

수사학과 설교와의 관계성을 논함에 있어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 수사학과 성경과의 연관성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사학이 서구 교육과 문화의 중심에 오랜동안 자리잡아 왔던 것을 염두에 둘 경우 성서기자들이 관례적인 논증의 패턴과 수사학의 형태를 따랐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서의 저자들 특히 신약성서 기자들은 그들 자신들의 명제를 지지하기 위해 빈번하게 수사학을 이용하였다는 것이 성서 곳곳에서 드러난다(갈 6, 2이하; 히 2, 1-4; 산상 수훈에서 보이는 ‘생략삼단논법’등). 이러한 성서와 수사학의 연관성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의 기원을 연 것은 18세기들어 바우어(Karl Ludwig Bauer) 가 쓴 ‘바울의 논쟁의 방법’(1774) 및 ‘바울의 고전 수사학적 기술’(1778)에 관한 논문이 그 효시를 이룬다. 성서학 분야에서의 수사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고조된 것은 1968년 SBL(th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모임에서 제임스 뮐렌버그(James Muilenburg)가 행한 “양식 비평 이후에 무엇?”(After FormCriticism What?) 으로 이를 계기로 수사비평으로의 전환이 성서학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체임 페렐만(Chaim Perelman), 올브렛츠- 타이테카(L. Olbrechts-Tyteca)의 논문 “새로운 수사학: 논쟁에 관한 논문”(The New Rhetoric: A Treatise on Argumentation)이 등장하면서 사회역사의 눈을 가지고 텍스트를 접하는 수사비평의 길을 열어놓았다.

 

설교가 수사학과 연결되어 수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끝나지않은 문제이다. 일부에서는 양자의 결합을 반대하기도 하고 또다른 한편에서는 양자의 결합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수사학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학자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라이드(Clyde Reid) 및 칼 바르트 에드바르드 투르나이젠으로 대변되는 말씀의 신학자들이다. 특별히 독일의 지성인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에서 웅변설(연설의 기술 Rednerkunst/ ars oratoria)이 인간의 약점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용하려는 재주라는 이유에서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물론 이런 평가는 수사학을 내용을 차치한 기교로만 국한시킬 경우 당연히 뒤따를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의 추출이라는 핵심을 놓치지않는 한에서 수사학을 논할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더욱이 설교라는 것이 기법이전에 내용을 문제삼는 장르임을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맥락에서 “수사학의 규칙들을 무시하게 되면, 고상하게 인위적인 족쇄와 장벽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동안, 합당한 이유에서, 걷기에 가장 좋다고 통상 생각되는 길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브라더스(John Broadus)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설교가 하나의 ‘연설’이라는 사실이다. 괴팅겐대학의 초대총장인 모스하임(Johan Lorenz von Mosheim)은 설교를 “하나의 연설”로 정의하고 있는데 요스티스(Manfred Josuttis)의 말처럼 만일 우리가 우리시대의 신학용어로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로 공적 연설 행위의 한 조각 언어“(Stueck Sprache)라고 한다면 우리는 바로 모스하임의 정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수사학이 효과적인 연설과 관련된 것이라면 설교와 수사학의 연관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1. 설교를 연설 일반에 포함시키는 문제와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 어거스틴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거스틴이 저술한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427) 제 4권(De doctrina christiana IV.)이래 이 문제는 수없이 논의되어 왔고 또 상반되는 평가를 받아왔다는 의미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어거스틴은 그 당시의 수사학자로서 수사학의 여러 규칙과 용례들을 설교에 적용시켰으며. 그에 의해 설교의 연설적 성격이 설교학의 대상으로 끌어 올려졌다. 비록 그가 정치적 법률적 그리고 미사여구의 식사(式辭)와 기독교의 설교를 구분했지만 어거스틴은 연설양식(genera dicendi)을 연습하는 작품가운데서 수사학과 설교사이의 공통점이 있음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수사학교 출신인고로 수사학적인 문체를 중시했으며 수사학을 설교에 이용하려 하였으면서도 설교가 수사학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어거스틴의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4권은 최초의 설교학 이론서로서 특히 기독교 독창적인 전달이론이 체계화되지 못한채 헬라와 로마에서 발전한 수사학이 기독교 고유의 전달을 침식하고 있을 때 성서의 전달과 수사학의 발견을 통한 기독교의 독창적인 전달을 다루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주후 397년 시작하여 417년에 완성시킨 것은 이런 고민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설교자가 언변의 능력(facultas eloquii)을 갖추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데 그렇다고 전달의 방법이 어거스틴의 주안점은 아니었다. 진정 그가 강조하려 한 것은 기술로서의 수사학 보다 그 내용인 진리 자체의 중요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유일한 교과서를 성경으로 잡았다. 즉 그는 수사학을 기독교 진리의 가장 중요한 주장과 연계시켜 교회의 첫 번째 그리고 근 천년동안 설교라고 하는 교회의 유일한 수사학을 만들어내게 하였던 것이다.

 
  1. 한편 중세에 이르러 설교와 수사학과의 관계는 설교의 침체와 함께 그다지 큰 진전을 이룩하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시대보다 수사학적 도움을 힘에 업은 설교기법(artes praedicandi)에 관련된 연구와 서적의 출판은 활발하였다. 예를 들어 도미니크 수도사인 샬랑(T. M. Charland)은 150여편의 설교기법과 관련된 글을 썼는가하면 로버트(Robert of Basevorn)의 Forma Praedicandi(설교의 형식), 웨일즈의 설교수사 토마스(Thomas of Waleys)가 쓴 De Modo Componendi Sermones(설교의 준비방법)등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수사학적 설교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중세에 설교준비를 위한 기술로 장려된 것을 보면 테마의 발견 – 주제도입의 다양한 방식(introductio thematis) – 주제의 구분(divisio thematis/ 대지를 2-4부로 나눔 3중 구분은 청중을 지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장려됨) – 선포와 확신의 부분(declartio et confirmatio partium) – 분할의 완성부(해설용 예화 성구인용 교부저작물)등으로 정리 할 수 있는데 이런 논리적 배열은 13세기 서구를 주도했던 스콜라 철학의 영향에 힘입는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iii.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안에서의 설교와 수사학의 관계는 끊임없는 부침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설교학적 이론을 제공했던 멜랑히톤(Ph. Melanchthon)은 어거스틴의 전통에 서서 설교학과 수사학을 결합시켰는데, 그의 “기초 수사학 상. 하”(Elementorum Rhe- toricum libri duo)는 정통주의 시대의 설교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세대에 와서 수사학이 급격하게 퇴조한는 현상을 보게 되는데 당시 영향력있는 설교가였던 히페리우스(Andreas Hyperius)의 설교학에서 이같은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법정의 연설과 설교의 차이를 강조하며 전통적인 수사학의 세가지 연설형태를 자신이 딤후 3, 16과 롬 15, 4에서 발견한 디다스칼리콘, 엘렝크티콘, 파이도이티콘, 에판올토티콘 파라클레티콘이라는 5개의 성서적인 연설로 대치한다. 히페리우스는 이러한 성서로 부터 추출한 5개의 연설들을 제시함을 통해 설교학의 내용문제와 형식문제간에 일치점이 있음을 표명하면서 수사학의 도움 없이도 성서 그 자체가 내용과 연설의 형식을 제공해 준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정통주의시대에 와서 수사학은 다시금 주목받게 되지만 곧이어 들이닥친 경건주의에 의해 수사학적 방법 일색의 설교론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경건주의자인 랑게(Joachim Lange)의 “공허함으로 채워진 설교이론에 반대하는 거룩한 연설“(Oratoria sacra ab artis homilecticae vanitate repurgata. 1707)은 그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방법형식주의에 대한 전투적 비장함이 가득차 있다.

설교학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시대에 이르러 다시한번 수사학의 한 특수 형태로 이해되어졌다. 이것은 모든 제목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대개 이 제목들은 설교학을 ”강단웅변“과 ”영적 웅변“의 지침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들어 최종적인 자리를 잡게 된다. 이와 관련해 빈처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놓는다:

“슐라이마허(Schleiermacher) 이래 설교학은 대다수가 수사학이 아닌 설교의 ’내용’이 그것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데 대체적인 일치를 보여왔다. “설교의 형태는 소재 자체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슈바이처의 유명한 말은 이러한 변화를 잘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설교학은 신학적인 관점으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인식 역시 설교학의 구도에서 느슨해졌다. 이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알렉산더 슈바이처가 이론적, 재료적, 형식적 설교학의 세부분으로 설교학을 나눈 것을 들 수 있다. 또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C. I. Nitzsch의 설교학을 들 수 있는데 니츠역시 “설교의 개념과 목적”에서 출발하여 “내용에 대한 정의‘와 그리고 형식 설교학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말하이네케(Ph. Marheineke)는 수사학을 해석학에 가깝게 밀착시켰는데, 그는 수사학이 ”생생한 구연“의 말씀과 관련하여 갖는 과제나, 해석학이 ”기록된 죽은 말씀“과 관련하여 갖는 과제나 그 과제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

 

설교의 형식문제는 순수 신학적인 질문들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노력에 의해 배제되어지지 않았다. 설교학의 두번째 세번째 요소로서의 설교의 형식문제는 19세기 설교학이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었으며 또 폭넓은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설교에 있어서 수사학의 영향력이 급격한 퇴조를 보이게 된 것은 “오직 성경만으로!“ ”오직 말씀만으로!“라는 기치아래 강단의 갱신을 외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였다. 칼 바르트와 투르나이젠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설교에서의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한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말할 것“(nachsprechen)을 주장하면서 설교가 ‘삶의 전쟁터로 달려나가는 앰블런스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였다. 그 결과 설교는 곧 주석이 되었고 설교의 내용에 최우선이 주어진 반면 설교의 전달 방법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이러한 말씀에의 강조는 그 당시 자유주의로 경도된 ‘현대적 설교 갱신 운동(Modernepredigt)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지만 불완전한 인간인 설교회중의 문제를 간과해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신학적 승리라는 전리품을 챙기는 대신 회중의 상실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회중의 공동화 현상은 그극복의 대안으로 설교에 있어서의 수사학적 방법의 결합을 요청하게 되었고 그 전위에 섰던 것이 에른스트 랑게(E. Lange)와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1. 이성봉 설교에 대한 수사학적 조명
 

이 성봉 목사는 그의 일생을 통틀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학문으로서의 신학 수업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으며 그 당시 대부분의 신학도가 그러했듯 단지 성경학원 차원의 수업만을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핵심적인 관심사로 삼는 수사학에 관한 교육 역시 전무한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1937년 그의 나이 38세때 단체 부흥사로 임명받은 이후 회갑에 이르기까지 1천 교회부흥 집회를 목표로 본격적인 부흥사의 길에 들어섰고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라는 그의 평생 슬로건처럼 인간적 정리를 넘어 지사충성(至死忠誠)의 자세로 헌신한 결과 수많은 생명을 주앞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복음사역의 성공은 물론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의 헌신적 자세가 가장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흥성회에서의 ‘설교’를 통한 사역에서 거둔 열매라는 점에서 회중에게 감동을 끼치고 전달되는 그의 설교의 ‘힘’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비록 학문적 수사학을 알지 못하였으나 실행적 연설의 달인이었으며 학문 이전의 현장의 전문가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이 성봉 목사의 설교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한 수사학의 5가지 기본 망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성봉 목사의 설교는 부흥 지침서로 발간한 요약식 설교집인 “부흥의 비결”을 제외하고는 “사랑의 강단”과 “임마누엘 강단”이라는 그의 저작집 2, 3권에 모두 49편이 수록되어있는데 이 설교문들과 그의 육성 설교녹음 테이프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갈 것이다.

 
  1. 1 논거발견술에서본 주제의 경향성 및 논거의 방식
 

주제설정이라고도 불리우는 논거발견술(inventio)은 주제를 이해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자기의 생각을 모은 일을 말한다. 따라서 논거배열술에서 연구해야할 과제는 중요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설교자가 어떤 논거를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찾아야 한다.
  1. 이성봉 목사의 설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설교의 주제는 개개인의 구원이라는 주제, 구원받은 이후의 삶의 변화라는 주제, 중생성결신유 재림이라는 사중복음 그리고 위로와 희망이라는 주제이다. 구원이라는 주제의 경우 이 목사는 인간 불행의 원인을 타락한 인간의 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따라서 회개를 통한 의롭다 하심을 입을 것을 먼저 요구한다. 이 목사는 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3중적으로 이해하는데 과거의 구원이란 죄악의 형벌에서의 구원으로, 현재의 구원을 죄의 지배로 부터의 구원으로 그리고 미래의 구원을 부활 완성 영생을 얻게 되는 최종 단계로 구분한다. 이 구원은 오직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으로 인간 자체에 주어진 가능성은 전무하다. 따라서 이 목사는 구원을 인간에게 가져오는 유일한 통로가 하나님의 사랑이 동인이 되어 인간이 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강조하면서 이 예수와의 연결방법으로 철저한 회개와 신앙을 제시한다.
변화의 복음 이라는 주제는 구원이후의 인간의 삶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 목사는 자신이 과거 병들어 생사의 기로에서 깨달은 세상의 허망함과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근거로 성도들의 삶이 변해야 함을 강변한다. 즉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그들의 일상적인 삶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삶의 내용을 이 목사는 건덕의 삶으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 건덕은 ‘지금 여기서’의 현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실현 가능해 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그가 내세우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그의 설교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이다. 중생을 통해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며 성결이란 성령의 역사로 인간이 죄와 죄의 성질 죄악에서 깨끗함을 받는 것이다.

신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질병으로부터 깨끗함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 목사 자신의 사역에 꺼지지않는 열정을 제공해준 동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유라는 주제는 이 목사 자신의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출현했던 이단들에 의한 신비주의적 오류의 경향성으로 인해 이 목사 스스로가 무척 조심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재림이란 주제는 이 목사의 인생관 세계관 그리고 역사관을 규정하는 틀인 동시에 이 생에서의 그리스도인 모두의 삶에 당위성을 제공하는 틀이기도 하다. 그는 주님의 재림이야 말로 하나님의 최대 계획이요 성도의 최대 소망이라고 본다. 이 목사는 주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간단없이 외쳤고 종말론적 긴박감에 살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궁극적 관심은 재림의 시기가 아니라 재림을 대비하는 자세에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설교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주제는 위로와 희망의 복음이라는 주제이다. 이 목사가 사역하던 당시의 상황이 ‘절망’, ‘빈곤’, ‘낙망’, ‘괴로움’등으로 대변되는 민족 최대의 시련기 였음을 염두에 둘 때 이 주제는 대단히 시의적절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 목사는 단지 사탕발림식의 위로가 아닌 고통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승화시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환란이라는 것이 단순히 불행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로 본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목사의 부흥 설교의 주된 주제는 구원과 죄, 회개와 변화된 삶, 사중복음 그리고 희망과 위로의 복음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부흥설교가 다루는 주제들과 그 궤도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합목적적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설교를 통해 수많은 회심자를 얻었다는 점에서 그의 설교는 단순한 신앙적 차원 이상의 사회학적 평가까지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 그렇다면 이 목사는 이러한 주제들을 어떻게 추출하였으며 또 추출해낸 주제들을 어떤 논거에 의존해서 펼쳐 나가고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논거에는 두 유형 즉 예증법과 생략 삼단 논법이 있다. 예증법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사실을 예로 들고 이를 바탕으로 귀납법과 유추를 통해 추리하는 논증법이라면 생략 삼단논법은 연역법으로 일종의 완곡한 연역법이다. 이 목사의 설교를 수사학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먼저 그의 설교 몇편을 분석해 보도록 하자:
 
  1. “주님을 사랑하자”라는 제하의 설교는 그 본문을 시 145편 20절(여호와께서 자기가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멸망하리로다)을 본문으로 하고 있다. 이 설교는 그 제목이 가리키고 있듯 예수를 사랑함을 그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 목사는 이 주제를 성경본문으로부터 추출하고 있다. 그러면서 본문에 나와있는 양자 택일적인 대구의 논리가운데 악인에 관한 부분은 생략한채 주를 사랑함만을 논지로 택해 그로부터 설교의 주제를 추출한다. 이 대 주제하에 그는 주를 사랑할 이유, 사랑의 성질 그리고 주를 사랑하는 자의 자세라는 세가지 소 주제를 세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 소주제들은 본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설교자 자신의 신학적 신앙적 입장으로부터 추론한 것이다. 그러면서 소주제의 논거를 세울때에 첫 번째 소주제에서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성구(요일 4: 10)라는 기술외적 논거를 내세운 뒤 인간의 몸의 구조를 설명하는 과학적 논증과 삼라만상의 변화라는 만인이 수긍할 수 있는 수사적 논증 그리고 이 목사 자신이 부흥성회에서 경험했던 실화인 역사적 예증을 통해 소주제를 연역해 낸다.
두 번째 소주제인 ‘사랑의 성질’은 다시 사랑은 많이 애모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사이에는 간격이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는 수고와 희생이 있다는 세 개의 소소주제로 세분되는데 이 소소주제의 추출은 철저히 이 목사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소소주제의 논거는 성구와도 같은 기술외적 논거가 아닌 기술외적 논거를 동원하기 마련이다. 첫 번째 소소대지의 논거 추론방식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랑은 많이 애모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지요? 부흥회하고 떠날때는 신도들이 이름을 써주고 사진까지 주면서 기도해 달라고, 자기도 꼭 목사님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한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웃는다. 얼마나 나를 생각해 주려는고, 아마 며칠은 샌각나겠지, 얼마 지나면 꿈에 떡맛 보듯이 생각날거다…”
  1. “고난극복의 비결”이라는 설교는 독특하게도 세 개의 성구(약 1: 2; 5: 13; 시 50: 15)를 본문으로 하고 있다. 이 목사는 이 설교에서 고난중에 즐거워함을 주제로 잡고 있는데 이 대주제는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 2) “너희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 5: 13)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 15)라는 세 개의 성구내용으로부터 추출한 것이다. 이 목사는 “고통을 기쁘게 여기라”는 대전제를 성경을 바탕으로 내건 뒤 그 이유를 ‘범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이기 때문’ ‘환난 고통은 즐거움의 표본이기에’ ‘훈련시키는 도구’ 그리고 환난당한 자의 기도할 이유‘라는 다섯 개의 소주제를 통해 논증해 나간다. 이 목사는 각각의 소 주제의 논거를 세움에 있어 다양한 방식을 사용한다. 첫 번 소주제의 경우 기술외적인 성구인용(쓴 것이나 단것이나 괴로운 것이나 즐거운 것이나 행복이나 불행이나 다 아버지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고후 5: 18))을 일차적 논거로 내세운 뒤 곧이어 욥, 다윗 요셉, 예수 그리고 요나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례를 제시함으로 역사적 예증으로 끌고 간다. 이에 반해 두 번째 소주제의 논거는 설교자 자신이 세운다(환난 고통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그리고 수사적 논거가 그 뒤를 따른 뒤(알곡은 까불면 까불수록 바싹바싹 까부는 사람에게로 들어가고, 쭉정이는 바람에 다 날아가고 만다, 모래위의 집인지 반석위의 집인지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장마물이 나봐야 아는 것이요 선한 목자인지 삯군 목자인지는 이리가 와보아야 아는 것이다) 기술외적인 논거로서 성구(시 119: 71)을 인용한다.
세 번째 소주제의 경우는 설교자 자신으로부터 설정되었으며 그 논거 역시 기술 내적인 논거들로 일관하고 있다. 즉 자연현상의 변화 – 해산의 수고 – 해방을 위한 고통이라는 수사적 논증이 연이어 동원되고 있다.
  1. 이에 반해 “천국 백성의 품성”이라는 설교는 다른 설교들과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설교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이 설교는 강해설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 목사의 설교가 당시 유행하던 본문 접맥식 제목설교이면서도 설교자라는 요인이 성경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경향성과 비교해 볼 때 구분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설교는 엄밀히 말해 성도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는 교육적 설교이면서 동시에 삶의 결단과 변화를 촉구하는 윤리적 설교이기도 하다. 이 목사는 이 설교의 대주제를 철저히 본문(마 5: 1-12)으로부터 추출한다. 그러면서 본문이 제시하고 있는 소주제를 따라 가난한 자의 복, 애통하는 자의 복 온유한 자의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자비한 자의 복, 마음이 깨끗한 자의 복이라는 6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따라서 이 설교의 경우 대주제와 소주제가 철저히 성경본문에 의지하는 흔치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 목사가 소주제의 논거를 제시할때에 다른 설교에서 흔히 사용하였던 성구를 인용한 기술외적 논증은 단지 두 번째 소주제(애통하는 자의 복)와 네 번째 소주제(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에서 한번씩 사용할뿐 나머지는 철저히 기술내적인 논거와 수사적 논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 만큼 이 설교가 구체적인 정보에 의한 로고스보다는 설교자의 에토스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이 성봉 목사의 설교는 철저히 대전제-소전제로부터 결론을 추론해 내는 삼단논법으로 연역적 기법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다 엄밀히 세분하자면 이 목사의 설교는 대전제나 소전제를 여러 명제들로 연쇄시켜 제시하는 연쇄 삼단논법(sorite)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중의 수준에서 발전한 것이고 그럴듯한 것 즉 대중이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 논증법으로 학식없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쉽게 다루어지는 대중적인 추론법으로 증명을 위한다기 보다는 설득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부흥성회에 몰려든 당시의 대중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지극히 타당한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부흥설교가 경도되기 쉬운 내용의 논리성이 결여된 정념에 호소하는 방식이 아닌 철저한 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 설교를 통해 설득주기를 시도했다는 것과 동시에 그러면서도 감정에 충격을 주는 감동주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는 사실이다. 설득하기 (확신시키기 fidem facere)에는 대체로 증거제시법(probatio)이라는 논리적이거나 준논리적인 장치가 요구되는데 이 목사의 설교는 이 점에서 훌륭한 논리적 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감동주기(감정에 충격주기/ animos impellere)란 입증을 위한 전언을 그 자체속에서가 아니라 전언의 용도와 전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질에 맞춰 생각해 본 뒤에 주관적이고 윤리적인 증거를 동원해 냄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목사는 바로 이점에 있어 매우 특출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논증을 통한 설득이 논리적 증거를 중요시 한다면 감동을 통한 설득은 전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질에 맞추어 고려하게 되고 따라서 논리적인 증거가 아니라 주관적이며 심리적이며 윤리적인 증거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 지는데 바로 이 점에서 이 목사의 탁월성이 두드러 진다고 볼 수 있다.

 
  1. 2 논거배열술로 본 이성봉 설교의 구성
 

논거배열술이란 담론의 구성 즉 말해야 할 것을 담론의 어느 부분에서 말해야 하는 가를 아는 것과 관련된 기술 또는 담론에 포함되는 모든 것을 가장 완벽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기술 또는 사물들이나 부분들의 적절한 위치와 서열을 할당함으로서 그것들을 유용하게 배분하는 기술등을 뜻한다. 즉 자신이 생각한 것을 순서있게 나열하여 초안을 짜는 일로, 주제들의 자료들을 순서있게 정돈하는 단계이다. 이것의 기능은 가르치고 감동시키고 즐겁게 하는 것(ut doceat, moveat, delectet)이다. 배열법은 서론과 결론이라는 감동주기와 사실과 이성에의 호소인 알려주기(설득하기)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진술부(사실들의 진술)와 논증부(설득의 수단이나 논증의 확립)가 후자에 속한다.

논거배열술에 있어 담론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수는 수사학자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머리말-진술부-논증부-맺음말의 체계를 주장한 반면 키케로는 머리말-진술부-분할-확증-논박-맺음말의 체계를 주장한다. 그러나 설교는 그 특성상 법정이나 문학과 다른 일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논쟁을 유발하는 법정의 변론과는 달리 진술부와 논증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두가지를 하나로 묶어 관찰하도록 할 것이다.

 

1) 머리말

청중이 주의를 기울이고 호감을 갖고 변론자를 따라오도록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머리말 즉 서론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구성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중의 정념을 자극함을 통해 이런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파토스와 관련된 부분들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반면 변론가가 앞으로 행할 설득과 논증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에토스의 여러 특징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성봉 설교에서 보여지는 서론의 형식을 보면 몇가지 특징이 드러나는데 그중 하나가 설교자가 말하려는 주제를 첫문장부터 직접 회중과 대면시키는 소위 직접 들어가기 방식을 택한다는 사실이다. 이 방식은 이 성봉 목사의 설교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인데 가령 그의 설교 “회개하라”(마 4: 17; 벧후 3: 8-9)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회개는 주님의 명령이요, 주의 소원인 것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 30) 이는 하면 하고 말면 말고 할 것이 아니다. 아니하면 아니되는 주의 뜻이니라

 

이 방식은 분명 정념의 자극을 통한 관심의 증대라기 보다는 설교자가 말하려는 주제를 회중에게 직접 대면시킨 경우이다. 이것은 아무런 여유를 주지않고 본론으로 돌입하는 듯한 건조한 인상을 주며 회중을 설득한다기 보다는 성경과 설교자의 권위를 바탕으로한 주제의 일방적 선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견 축제적 성격의 부흥집회와는 다소 거리가 있게 느껴지는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부흥집회에 참석한 회중들이 어느 정도는 말씀에 대한 기대와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음를 감안하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방식이다.

이 목사에게서 보여지는 또하나의 서론 방식은 설교의 주제를 멀리서부터 돌아 들어가는 간접적 접근방식이다. 가령 이 목사 자신의 만주 목회 경험으로 시작되는 “살았느냐 죽었느냐” 라는 설교나 “미국사회에서 요구되는 인물에 대한 10가지 조건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인물“이라는 설교가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생소한 정보를 통해 회중의 정념을 자극함으로 회중들의 들으려는 욕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탁월한 방식이다. 이 방식은 전술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설교자의 설득 의도가 극명하게 부각되며 또한 회중들에게 긴장을 완화시키며 설교자가 말하려는 주제속으로 자연스런 ‘이해의 주단’을 깔아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특히 바르트가 갈파한 것처럼 설교의 승패가 설교시작후 2-3분내에 결정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모든 설교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방식이다.

 

퀸틸리아누스는 배열법과 관련하여 세가지 방식을 추천한다: 1.머리말에 강하고 무거운 논거들을 배치하고 점차로 이를 완화시켜 나가는 방식 2. 이와 정 반대로 머리말에 가벼운 논거를 배치한후 점차 무거운 것으로 옮겨가는 방식(전자는 망각의 위험이 있는 반면 후자는 싫증의 위험이 있음) 3. 절충안으로 머리와 맺음에 무거운 주제 그리고 중간에는 비중이 약하고 가벼운 논거들 배치. 이 목사의 경우는 강하고 무거운 논거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배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진술부(diegesis)와 확증부(apodeixis)

머리말 다음에는 사실들을 이야기하거나 재구성함을 목적으로 한 진술부 및 그것의 진위를 주장하는 확증부가 자리잡는다. 이 부분은 설교학에서 말하는 설교본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설교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능한한 객관적으로 진술해야 하기 때문에 로고스적 특성들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진술(narration)이란 사실에 대한 보고로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 확증(confirmation)은 증명과 반박의 단계로 논거들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논거를 반박하면서 자신의 논거를 제시함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성봉 목사의 설교는 하나의 주제를 연역적으로 풀어나가는 연역설교이면서 그 본론의 구성을 철저히 3-6개의 대지로 구성하고 있다. 이런 기본 구도아래 진술부와 확증부가 이 성봉 설교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몇편의 설교를 통해 분석해 보도록 하자:

 
  1. “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분석:
이 설교에서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영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서론을 마무리한 뒤 모두 5개의 대지(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이다. 유화의 영이다. 사죄의 영이다. 희생의 영이다. 복종하는 영이다)를 중심으로 논지를 펼쳐 나간다. 각 대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령 첫 번째 대지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라는 점을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진술하는 진술부가 나온 뒤 ‘어떻게 사람이 성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확증부가 그 뒤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대지인 ‘유화의 영인 성령’을 다룸에 있어서는 유화의 개념을 설명하는 진술부 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확증부가 빠져 있다. 나머지 대지들도 모두 확증부가 생략된채 진술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참 평안의 도“에 대한 분석:
이 설교는 마 11: 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을 본문으로 모두 5개의 대지로 이루어진 연역적 구성을 보인다. 각각의 대지들은 사람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진행방식이 대지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 번째 대지(있어야 할 곳을 떠난 고로 평안이 없음)는 근심많은 부자영감의 예화를 앞에 두면서 평안에 대한 일반의 상식을 뒤짚는 소위 ‘유화적 논쟁’을 유도한다. 그런 다음 이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일체의 부요는 진정한 평안이 없다는 진술로 나아간다. 그러나 두 번째 대지(죄없이함을 받아야 함)에서는 진술적인 예화(죄를 회개한 어느 부인의 이야기)를 앞에 배치한다음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진술로 끝을 맺는다. 세 번째 대지(선후가 전도된 생활은 평안이 없음)에서는 선후의 중요성과 관련된 내용을 상식 및 성경을 들어 진술한 뒤 유물론자들의 주장을 도입하여 진술된 내용과의 논쟁을 설정한다.

 

이상의 설교분석은 이 성봉 목사의 설교본론이 수사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즉 이 목사의 설교 대부분에서 논쟁을 유발시키는 의도적인 배열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성경에서 진술부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설사 논쟁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라 하더라도 철저히 설교자가 정한 한 주제를 향한 순방향적 성격을 갖고 있다. 즉 대립논증 보다는 한 방향으로의 지지논증이 주를 이룬다.

특징적인 것은 이 목사의 진술부는 수사학에서 이야기하는 비장식성 – 진술부에는 여담이나 열변 직접적인 논증이 끼어들지 못한다 진술에 고유한 기술이란 없으며 단지 명확하고 사실임직하고 간결하여야 한다 – 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설교 전체의 성격이 한 방향으로의 진술일변이며 이를 위해 이 목사는 사실적 예화라든지 가상적 비 상식적인 상황의 설정등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또 간결함 대신 열거와 반복이 주류를 이룬다. 이것은 설교라나느 독특한 장르가 간결성을 요구하는 수사학의 일반적 특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목사가 사실들의 제시와 관련하여 발생한 순서대로 사실을 말하는 자연적 순서(ordo natualis)가 아닌 설교자의 자의가 크게 작용하는 인위적 순서(ordo artificialis)를 주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특히 대지와 소대지를 설정하는데서 극명하게 보이는데 주제적 제목설교라는 설교양식을 선호하는 설교자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목사는 진술부를 끝내고 나서도 다시 그 사안에 대한 중복진술(epidiegesis)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중복 진술이란 첫 번째 진술이 매우 짦았을 경우 뒤이어 이것을 상세하게 다시 언급해야 하는것을 말하는데 이 목사의 설교는 거의 대부분 이런 중복진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목사의 설교에서는 수사학에서 말하는 ‘여담’이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여담의 기능이 주제의 엄밀한 틀을 벗어남으로서 담론의 지나친 논리적인 면을 보완하고 청중들의 정념을 불러일으키거나 진정시키는데 있다고 할 때 부흥설교에서의 여담의 사용은 매우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목사는 회중들에게 친숙한 속담이나 생활상의 비유를 위트와 함께 전달함으로 건조한 논리의 틀을 부드럽게 윤활시킨다.

 

3) 맺음말

맺음말에서는 기존의 논의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요약하기도 하지만 청중의 심금을 울림으로서 설득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래 주로 청중들의 정념에 호소하는 방식이 사용되곤 하는데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맺음말은 파토스와 로고스가 가장 탁월하게 결합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곽 안련이 주장한 것처럼 설교에 있어서도 결론은 “설교 전체의 관이요 중심점” 설교의 회중 접맥이 가장 극명하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결론 부분이다. 이 성봉 설교의 결론 부분은 대략 두가지의 특징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애용되어온 방식 즉 설교 전체의 내용을 요약 반복 하면서 실제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하는 형태가 그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기도의 목적이 순결하여야 하며 예수의 공로를 의지하여 간절히 진심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응답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아 항상 깨어 쉬지말고 기도하세. 주님 부탁하셨으니 쉬지말고 기도하세 말세에 우리에게 성신을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주실 줄 믿고 쉬지말고 기도하세”

 

이 방식은 설교의 내용을 재 정리한 로고스적 호소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이 목사는 회중들이 설교의 핵심을 정리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다만 이 요약식 결론에서 표현의 동일성을 피하고 표현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은 여전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결론과 관련된 또 하나의 특징은 이 목사가 설교 마무리 부분을 찬송이나 자신이 작시한 노래들로 끝마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설교의 내용과 잘 조화되는 찬양의 가사를 손수 작시하여 부르곤 했으며 주로 희망과 용기를 고취하는 내용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구연으로 일관하던 설교가 노래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어진다는 것은 회중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결코 적지않다. 설교가 내용을 위주로 하는 로고스적 호소인 동시에 지적인 접촉을 위주로 하는 것이라면 노래는 정적인 호소를 주요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회중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다. 특히 이 목사의 음성이 풍부한 영성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회중들의 심령에 평안과 희열을 심어주기에 적합한 순기능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 3 표현술
 

논거발견술과 논거배열술에 이어 수사적 기술을 구성하는 세 번째 부분인 표현술은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의미한다. 즉 앞의 두 부분에 의해 구성된 뼈대에 살을 붙이고 담론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담론의 귀결점이기도하다. 표현술은 논거발견술을 통해 제시된 ‘내용’에 적절한 말과 문장들을 부여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주로 문체 즉 전체의 형식들뿐 아니라 하나 또는 몇몇 문장들의 형식에도 관련된다. 표현술은 각자가 생각한 방식을 표현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문체(style) 와 문체의 표현수단인 문채(figure)를 그 내용으로 갖는다.

 

전통 수사학에서 문체는 주제 청중 변론가가 만나는 장소이며 가장 훌륭한 문체즉 가장 효과적인 문체는 주제 청중 변론가 각각의 필요성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문체이다 즉 훌륭하고 효과적인 문체는 다루고자 하는 주제나 듣는 청중에 ‘적합한’ 문체이며 변론가 자신의 에토스가 녹녹하게 드러나 있는 문체여야 한다. 수사학에서 이야기하는 문체에는 평범한 문체 (style simple) 보통의 문체 (style moyen) 숭고한 문체(style sublime)가 있는데 이 모든 문체들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는 명확성 정확성 장식 적합성이다.

 
  1.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목사의 설교를 문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논리의 명확성과 설교내용에 부합되는 적합성에서 특히 두드러진 강점을 갖는다. 그는 설교의 문장들을 구사함에 있어 장식이나 허식 불필요한 잉여가 전혀 없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렵고 난삽한 문체는 일차적인 의미전달에서 실패한 문체라 할 수 있고 이것을 극복하는 대안이 일상적인 언어를의 구사에 있다면 이 목사의 설교는 이런 요소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성공적 문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수사학에서 종교적인 연설에 적합하다고 하는 숭고한 문체대신 서민들의 언어를 주로 하는 보통의 문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성은 부훙성회에서의 설교가 장엄한 의식을 기초로한 고교회적인 설교와는 전혀 다른 일반 서민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합목적적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문체와 관련된 한 예를 다음의 문장에서 볼 수 있다: “사람의 마음속은 꼭 구정물 통 같아서 가만히 두면 물이 맑아 깨끗한 듯 하나 한번 막대기로 속을 휘저으면 생선가시, 콩나물 찌꺼기. 김치줄거리가 우그르르 떠오른다”(임마누엘 강단, p. 45). 이런 표현들은 전하려는 내용을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접맥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회중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그 내용을 ‘회화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듣는 설교뿐 아니라 ‘상상을 통한 보는 설교’라는 한단계 높은 전달기법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사학에서 바람직한 문체의 하나로 규정하는 간결성은 이 목사의 설교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요소이다. 오히려 그는 의도적으로 부연과 반복을 계속함을 통해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을 회중들에게 각인시키려 노력한다.

“산 사람은 움직임이 있으나 죽은 자는 엎어 놓아도 그대로, 젖혀 놓아도 그대로, 모로 놓아도 그대로 거꾸로 놓아도 그대로 자유활동이 없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모양으로 언제 보아도 그 모양, 향상도 없고 발전도 없고 진진도 장성도 없다”. 이 설교를 간결성을 기준으로 작성할 경우 ‘죽은 자는 움직임이 없다’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이 목사는 다양한 수식을 통해 죽은 자의 상태를 묘사함으로 회중들에게 단순한 정보의 차원이 아닌 점감적 동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설교가 일회적 연설일 뿐 아니라 내용전달 위주의 법정 연설이나 정치 연설과 달리 정적인 접근을 통한 내용전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오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전달 내용의 명확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그리고 정적인 터치를 통해 지속적으로 조명해 주는 방식은 종교연설인 설교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1. 문채는 문체의 표현 수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은유 과장 비유 생략등을 그 내용으로 갖는다. 이 성봉 설교가 보이는 문채상의 특징 은유와 직유를 포괄하는 비유적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설교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하나의 실재를 다르지만 유사하고 훨씬 구체적이고 감각적 직접적 명서로 표현하는 은유보다는 ‘-과 같은’ ‘-과 흡사한’ ‘마치’ ‘-처럼’등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축약된 비유인 직유를 즐겨 사용한다. ‘돌같은 마음’ ‘ 솜과 같이 부드럽고 고기같이 부드럽다’ ‘우는 사자와 같이’ ‘공작같은 교만’ ‘염소같은 음란’ ‘돼지같은 욕심’ ‘뱀의 살같이’ 얼음장 같이‘등은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유의 사용은 체험적인 차원의 유사성을 통해 전달하려는 실체를 실어나른다는 점에서 전달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더욱이 당시 회중들의 전체적인 이해도가 그리 높지않은 상태에서 이런 방식은 설교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이 방식은 효과만큼이나 위험성을 내포한다. 즉 유사성이란 동일성이 아닌 부분적인 동일성과 ’차이‘를 내표하기 마련이다. 또 유사성은 전체적인 감정인데 이것은 각자가 습득해 온데서 유래한다. 문제는 그 습득이라는 것이 문화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수용능력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진리의 핵심을 전달함에 있어 비유에만 의존하게 되면 회중들 각자의 경험적 차원의 상이성으로 인해 각기 다른 유사성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 진실이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목사의 설교에서 보이는 또하나의 문채적 특징은 대조법의 활발한 사용이다. 실상 두 개의 상반되는 사안을 대조적으로 놓고 비교하면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가장 이해하기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용법은 이 목사의 설교 제목설정에서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 ‘살았느냐 죽었느냐’, ‘성경에 나타난 좌익과 우익’ – 어떤 설교든지 전하려는 내용과 상반되는 것을 대조시킴으로 설교를 이분법적 도식으로 단순화 시킨다. 말하자면 이 경우 반제(antithese)는 주제와 대립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주제를 강조하는 형용의 기능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목사의 육성설교에서 보이는 현상은 대화법을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강조하려는 내용 및 성구의 인용시 반드시 회중들로 따라 반복하게 한다. 이는 회중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설교에 집중하게 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목사의 문채사용은 단순한 편이다. 그에게서는 환유나 상징 과장 도치 생략같은 기법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즉 그만큼 그의 설교가 문채상으로 소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박한 문채가 구체적인 결실로 나타났다는 것은 동시대의 상황에 적합한 것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웅변하는 것이다.

 
  1. 4 연기술
연기술은 말의 구체적인 실행과 관련된 방식들을 규정짓는 수사적 기술의 한 분야이며 이는 크게 목소리와 동작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3권에서 연기술을 간단히 언급하면서 연기술이 표현술에 뒤늦게 덧붙여졌다는 이유에서 그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연기술의 중요성이 인정된 것은 라틴 수사학에 이르러서인데 가령 키케로는 연기술을 목소리와 동작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육체의 표현술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목소리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적절하며 발음은 분명하고 정확해야 한다. 호흡은 잘 조절되고 적절히 분배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연극적인 효과는 피하되 서술부에서는 목소리를 간단명료하게 그리고 논증부에서는 보다 권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호소에서 연민 또는 분노에서 기원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들의 변주를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동작에 관해서는 얼굴 표정과 손동작에 할애됨 입술을 비꼰다든지 입을 너무 크게 벌린다든지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눈을 땅에 내리깔고 눈썹을 치켜세우는 일등은 가급적이면 삼가야 한다.

 

우리의 연구에서 이 성봉 목사의 실제 설교실황을 담은 동영상을 확보할 수 없는 관계로 연기술의 핵심으로 간주되어온 손기술등 그의 비언어적 요소를 살펴볼 수 없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그의 육성 녹음 테이프를 통해 언어적 측면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녹음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비언어적 동작과 관련된 것은 그가 설교의 문장 사이에 빈번하게 박수를 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부흥사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인데 이를 통해 내용의 전개에 리듬을 주며 청각적 환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한 듯 하다.

그의 음성은 전반적으로 박력이 넘쳐나며 기본적으로 기도로 잘 단련된 영감있는 음성으로 약간 허스키한 감이 없지않다. 그러나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으로 미루어 오히려 이런 음성이 설교의 전달에는 더욱 효과적이고 설교자에 대한 영적 신뢰를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설교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음성의 변화를 시도한다. 가령 그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대화법에서는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따라 각기 다른 억양을 구사함으로 사실성을 높이고 있는데 이는 마르틴 루터가 구사했던 ‘가상대화법’과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 문장안에서도 핵심이 되는 단어나 표현은 강세를 주어 표현하고 있으며 또 문장 자체가 중요한 핵심을 전달할 경우는 장중한 음성으로 처리하는 반면 일반 수식과 서술에서는 평이한 구어체를 사용함으로 변화를 꾀한다.

동시에 내용을 전개해 나갈 때 변사식의 약한 리듬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그당시 변사문화에 익숙했던 회중들에게는 친근한 어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목사는 매우 분명한 발음을 구사하면서도 때때로 문장의 종성 부분을 길게 처리하는데 이것은 그의 언어사용상의 습성인 동시에 오랜시간 지속되는 설교에서 회중들로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라 여겨진다.

 
  1. 나오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수사학의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이 성봉 목사의 설교를 분석해 보았다. 수사학이 효과적인 연설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일반론에도 불구하고 설교라는 종교적 담화 자체를 규정함에 있어 분명한 한게를 갖고 있고 또 수사학적 교육이 전무한 한국적 상황에서 배태된 이 목사의 설교를 수사학의 틀에 의존해 분석하는 연구는 그 자체로 반론의 여지를 내재할 수밖에 없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연구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이 목사는 ‘한국적 상황’과 그 시대의 회중을 위해 나름대로의 설득적 기법을 구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고 또 학문적인 이론이 거둘 수 있는 성과 이상을 거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서구인들의 정서를 바탕으로 생겨난 수사학적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 보다는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한 설득이론의 개발이 필요함과 이를 바탕으로한 수사학적 훈련이 설교자들에게 접맥될 경우 보다 효과적인 설교의 성과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해 준다.

이 성봉 목사의 설교에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설교자가 당시 회중의 민도와 부흥성회라는 특수한 집회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함으로 연설에 있어서의 파토스의 문제에 정통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회중파악은 설교자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과 맞물려 효과적인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 목사의 설교는 그 기량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그의 목회자로서의 순전함과 성실함 그리고 경건함이라는 설교자의 에토스가 그의 설교의 전제와 권위가 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복음의 비젼과 깨끗한 삶을 통한 모범은 설교자가 주체가 된 이 목사의 부흥설교의 권위를 가능케 하였던 가장 강력한 토대였다. 이것은 설교가 기량이전에 인격의 문제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한번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설교에 있어서의 선후의 문제가 온전한 자리를 지키고 또 조화를 이룰 때 ‘설득적이고 전달되는 설교’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설교자의 한 모범과 전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이 성봉 목사는 시대와 상관없이 기억되어야 할 우리의 사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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