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SungBong Mission​
주님의 품에 안기신 고 이성봉 목사님의 뜻을 이어받아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1965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실천적 사명을 이어온 선교회입니다.
선봉선교회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죽도록 충성하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목사님 소개
사랑을 전하는 목회자로 복음을 전하는 부흥사로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오늘날 너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아멘."
목사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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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행 1 : 8),
나의 갈 길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내 할 일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내 할 말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내 먹을 것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오직 주님께 바친 몸 그의 능력의 손에 붙잡혀 신앙생활 사십 년간에 부흥 사명이 임한 지 이십삼 년 동안 한국 각지로, 일본으로, 만주 등지로 전도 여행하며 지난 자취를 회고해 보면 신기하고 오묘하신 주님의 섭리와 경륜을 다 측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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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출판 자료

이성봉 목사님의 생애와 사역을 발표한 연구 및 논문 자료와 저작집/부흥운동/설교 자서전/만화/예화 등의 출판물과 자료들을 성봉선교회는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성봉의 성서 해석학 수립을 위한 하나의 전진 – 윤철원 교수/서울신학대학교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1-21 11:57
조회
37

이성봉의 성서 해석학 수립을 위한 하나의 전진

 

윤철원(서울신대, 신약학)

 

 

 

이성봉 목사의 탄생 100주년 기념 논문집에 기고하는 것은 필자에게 한없는 영광이며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귀중한 기회이기 때문에 그 어른의 위업, 특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야말로 평생을 헌신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격과 진리를 향한 투신에 대하여 끝없는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성봉 목사를 한국 개신교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이해한다. 필자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로부터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에 대해서 자주 듣고 자랐다. 하얀 수염의 도사 같은 분이라고 하던데…특히 그는 “천로역정 강화”라는 특이한 설교 형식을 통해서 수심에 사로잡혀 아무 희망도 없던 한국 민중들의 영혼에 하나님 나라의 열정을 불타게 만들었던 분이다.

어느 교수 한 분이 가난한 유학생 시절 아무런 도움의 손길이 없고 방은 춥던 시절 오직 한 가지만 가능한 시절, 성서를 붙들고 막 읽어 나가는데, 불(火) 자만 찾아가면서 읽고 있는데 그 춥게 느꼈던 한기(寒氣)는 온데 간데 없고 기쁨과 은총만 충만한 체험을 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러한 동일한 체험이 한국의 민중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성봉 목사를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1. 글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성서학자로서 본 연구를 진행할 것이므로 역사적인 분석이나 연대기를 재구성하기보다는 성서학의 최근 읽기 방법을 통해서 이성봉 목사의 설교를 대표하는 “천로역정 강화”를 중심으로 그의 성서 해석학을 수립하기 위한 하나의 작업을 시도하면서 앞으로 계속 이어질 학문적인 논의들을 자극하며 또한 공유할 것을 기대하면서 본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필자가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를 중심으로 연구하는데는 그만한 목적과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한국성결 교회가 낳은 세계적인 부흥사인 이성봉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너무 미약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천로역정 강화”는 이성봉을 대표하는 등록 상표나 마찬가지지만 그의 독특하고 흥미있는 성서 해석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한번도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성봉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가 장로교 신학자로부터 시작했다는 것만 봐도 그에 대한 연구가 아주 미약한 실정임이 드러난다.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를 듣고 감동받은 일화는 수없이 많아 이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그가 부흥회를 개최할 적마다 입추의 여지없이 수많은 성도들이 모여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에 대하여 언급된 자료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이것은 아직까지 이성봉 목사에 대해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반성은 필자가 성결교회에 소속한 신학자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20세기 초기에서 중기까지 한국교회의 강단을 뜨겁게 달군 부흥사들 가운데서 이성봉 만한 목사는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의 “천로역정 강화”를 철저하게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배들에 대한 부산한 평가 작업에 비하면 시간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고증과 분석이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반성과 함께 필자는 부족하지만, 본 연구를 하나의 기초 삼아 이성봉 목사에 대한 성서 해석학적 논의가 후배들을 통해서 더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1. 이성봉 목사와 그의 문학적 천재성
2-1. 이성봉의 설교자로서의 자질

먼저 필자는 이성봉목사가 어떤 배경에서 “천로역정 강화”를 구상하고 설교하게 되었는지 간단히 추적해보려고 한다. 이성봉은 1900년 7월 4일 평남 강동군 이인실과 김진실 씨의 장남으로 출생했는데, 그가 여섯 살 되던 때에 온 가족이 회심하고 예수를 믿게 된다. 온 가족이 예수를 영접하고 함께 신앙 생활에 매진하는 것은 신약성서의 많은 경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가장 바람직한 신앙 유형이다. 이성봉의 인생에서 가장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은 그가 여섯 살 때 신약성서를 강독한 일이다. 또한 그는 성탄절이나 추수 감사절이면 독창이나 연설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필자는 그가 어릴 적 읽은 성서가 그의 설교에서 중요한 골격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제안한다. 어린 시절에 익힌 독창과 설득력 있게 연설할 수 있는 능력은 그가 설교하는 목사로서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음은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칼 바르트의 경우에서도 동일하게 비교할 수 있다. 그의 자전적인 글들에 근거한 부쉬(Busch)는 바르트의 인생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 바젤-독일 어린이 찬송가를 어머니에게서 배웠는데, 이 찬송들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찬송가들은 신학자 부르크하르트(A. Burckhardt)가 쓴 것이었다. 그는 위대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바르트는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노래들은 바르트의 유년기에 적합한 하나의 형태로, 19세기 마지막 10년대를 시작하는 시기에 바르트의 최초의 신학 교육을 위한 교과서였다. 바르트에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은 이 신중한 가사들은 크리스마스, 종려 주일, 성금요일, 부활절, 승천일, 성령 강림절에 대해서 언급하는 소박한 자기 확신이었다… 역사? 교리? 교의? 신화?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이었다.

바르트의 유년기 경험처럼, 이성봉의 설교자로서의 자질 역시 어릴 적부터 잘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성봉은 26세 때에 경성 성서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이성봉은 그 때의 감회를 이렇게 적고 있다:

모처럼 하고 싶은 공부요 소원 성취라, 그곳에 가보니 은혜의 별세계라. 그곳에서는 나를 3년간 불 가마에서 빚어내는데, 지적으로는 별 것 없었으나 영적으로 부흥과 말씀과 신앙을 통하여 깊이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들… 그 중에도 특히 이명직 목사님은 나의 잊지 못할 은사이니, 그의 성경 강의와 설교 때는 시간 시간 은혜로웠다.

어린 시절에 자주 실연(實演)한 독창과 연설 그리고 신학교에서의 뜨거운 체험은 이후 이성봉의 부흥 운동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제공하게 되는 자양분이 되었다. 어린 시절과 신학생 시절의 청년 이성봉에게 제공된 이러한 모든 경험은 분명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었다. 신학생 신분으로 이성봉은 유년 주일학교에서 동화 설교와 노래를 부르면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를 장차 한국 교회의 부흥 운동을 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이렇게 준비시켰던 것이다.

 

2-2.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에 대한 몇 가지 질문

번연(John Bunyan, 1628-88)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from This World to That Which Is to come, Delivered Under the Similitude of a Dream)에 근거한 이성봉 목사의 강화는 오늘날의 강해 설교와 더불어 융성(隆盛)하는 이야기 설교(narrative preaching)의 원형이 될 만큼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이다. 버트릭(Buttrick)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이야기”에 통합하는 것으로 설교를 정의한다. 즉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사용하는 언어는 “이야기”(story)라는 형태를 띠고 그 모습을 형성한다. 이런 이야기는 하나님과 관련된 믿음의 세계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언어는 그 언어가 인간의 언어지만 믿음의 이야기로 청중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 설교의 원형을 우리는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는 그것을 육성 녹음으로 듣게 되었는데,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더불어 묻어나는 열정적인 외침에 큰 감화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반향과 감동을 일으켰던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에 대해서 여러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성봉은 왜 천로역정을 강화(講話)하려고 했을까? 시대적인 배경이 암울한 일제 통치기였기 때문인가? 우선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유비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사용한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예화들이 이 점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고려할 사항은 이성봉 목사가 타 교단의 부흥사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적 차원에서 그의 강화를 설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성봉 목사의 맏사위 정승일 목사는 “당시의 부흥사였던 김인서 목사(1894 1964)와는 너무나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고 말하고, “이성봉 목사는 본래 평민 전도자를 자처”했기 때문에 이런 추측은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그렇다면 이성봉 목사가 본래 만담(漫談)의 세계에 심취했거나 좋은 구변의 결과가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그러나 셋째 딸 이의숙 권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성봉 목사는 평소에는 말이 없는 분이며, 특히 가정에서조차도 세상 이야기는 일절 삼가지만, 강단에 올라서기만 하면 전혀 다른 모습에 놀라게 되었다고 어머니가 회고하시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이성봉 목사는 하나님의 복음 증거자로서 그의 사명을 완수한 당시의 의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그의 “천로역정 강화”의 시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만 그가 이 강화를 통해서 수많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감화를 주었다는 것 이외에는 분석할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그러나 가장 개연성있는 설명은 정승일 목사의 증언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성봉 목사가 천로역정 강화를 주도적으로 활용한 것은 왜정 시절에 평민 전도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고, 또한 암울한 시대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평민들에게 천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종의 단계를 겪는 과정이 필요한데, 천로역정이야말로 그 점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필자가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가치있는 결과로 꼽을 수 있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천로역정 강화가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과정을 이의숙 권사의 증언으로 들어보자:

이성봉 목사가 목포에서 신의주로 전임해서 목회할 때인 1937년 정의근 장로(본래 정 장로는 일본에서 유학한 지식인으로, 본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뉴욕 한빛 교회 원로 목사인 정승일 목사의 선친으로, 신의주 동부 성결교회가 설립될 때 큰 역할을 했다)로부터 한 권의 천로역정을 선물로 받게 되는데, 열심히 탐독한 후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감화를 받은 후 이성봉의 설교는 천로역정을 중심으로 하는 귀한 강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승일 목사의 증언은 약간 상반된 듯하다. 정 목사에 의하면,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는 목포(북교동 교회)에서 신의주로 이전하기 몇 년 전부터 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권사는 신의주에서 부흥사로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천로역정 강화”를 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정의근 장로가 선물한 한 권의 책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며 낙심하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엄청난 감화를 끼치고 비전을 제공해 준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이성봉의 성서 해석학 수립을 위한 기초 연구
이성봉은 지난 세기 한국 성결교회가 이 땅에서 배출한 인물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사용한 종이 분명하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국내는 물론 일본(1939년), 만주(41-45년) 뿐 아니라 미국(59년)까지 가서 사역한 당시 보기 드문 부흥사였다. 이러한 점은 학자들의 평가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점이다. 그러므로 90년 전통의 한국 성결교회는 이러한 뛰어난 하나님의 종을 신앙의 선배로 모시고 있음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본고의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성봉 목사를 대표하는 것은 “천로역정 강화”인데, 이것은 수사학의 이해를 따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가장 문학적인 그의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성봉의 성서해석학의 수립을 위한 하나의 전제로서 수사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3-1. 이성봉 목사의 성서 해석학 수립을 위한 수사학 이해

고대부터 수사학은 이미 젊은이들이 학교의 교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과목으로 교육받았을 뿐 아니라, 수사학은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 가장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사학에 대한 열심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아주 자연스런 것이었다.

우리가 이성봉의 성서 해석학을 수립하려면 수사학(rhetoric)과 알레고리(allegory)에 대한 일반 원리를 먼저 탐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성봉의 성서 해석, 특히 “천로역정 강화” 분석은 전적으로 수사학과 알레고리에 대한 이해와 긴밀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성봉 목사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수사학이나 알레고리에 대한 지식을 접했는지에 대해서는 접어두더라도, 그의 수사학에 대한 조예(造詣)는 타의 추종을 가히 불허하는 탁월한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데, 누구나 이성봉의 정통한 수사학적 적용성을 그의 저서와 육성 녹음된 설교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수사학의 역사적인 발전을 살펴보고 이성봉 목사의 성서 해석을 평가하도록 한다.

 

3-1-1. 수사학의 역사적 이해

고대 문헌은 호머(Homer)에서 수사학의 기원을 찾는다. 그러나 수사학은 시실리(Sicily)의 시라큐스(Syracuse)에 살던 그리스인들로부터 B.C.E. 5세기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아주 기민하고 논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코락스(Corax)와 티시아스(Tisias)는 그들이 소송을 제기할 때 도움을 주고자 핸드북(τεχναι, artes)을 만들었다. 코락스는 수사학이란 기술을 최초로 가졌던 사람이며, “설득의 장인”이라는 그 말의 현존하는 정의를 최초로 내린 사람이다. 여기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은 롤랑 바르트에게서 들을 수 있다:

수사학은 소유권 소송에서 생겨났다. B.C.E. 485년경 두 명의 시실리아의 폭군인 겔론과 히에론은 시라큐스에 사람이 살도록 만들고 용병들의 몫으로 나누어주기 위해 강제 이주와 인구 이동과 토지 수용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들이 민주주의의 봉기에 의해 전복되었을 때, 그래서 원래 상태로 사람들이 복귀하고자 할 때, 토지 소유권이 모호해졌기 때문에 많은 소송들이 발생했다. 이런 소송들은 새로운 유형의 것이 되었다. 즉 이 소송에 저명한 민간 배심원들이 동원되었는데,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그들 앞에서 화술이 능란할 필요가 있다. 이 웅변술은 동시에 민주적이고 선동적인 성격, 재판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급속히 교육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이 새로운 학과의 초기 선생들로는 아그리젠토의 엠페도클레스, 코락스와 시라큐스 지방 출신인 그의 제자 그리고 티시아스가 있었다.

물론 수사학이란 말의 어원에는 “말을 잘하는 기술”이라든지 “표현하는 언어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요령”도 들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히 법정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조리있는 논리의 전개와 더불어 상대방이 굴복할 수 있도록 나름의 장식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런 예들은 의사와 수사학자를 놓고 군중들 앞에서 의사를 뽑으라고 한다면 수사학자를 의사로 뽑을 것이라는 하나의 이야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겠다.

그러나 고르기아스 같은 수사학자들이 변증가는 당면한 문제의 진위(眞僞)에는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사실이 수사학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대변하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까지 수사학은 수많은 오해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즉 수사학은 단지 언어의 기교에만 치중할 뿐 문장이나 말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것이 표현되거나 발설되는 것으로 이해되곤 했다는 것이다. 물론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은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설교자들은 언어의 장식을 늘어놓으므로 청중으로 하여금 노여움을 넘어 역겨움의 세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반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단순히 진리를 향한 열정으로 설교자 앞에 모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수사학이라는 말은 말과 언어의 장난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소피스트들의 비윤리성에 싫증난 이소크라테스(Isocrates, 436-338 B.C.E.)는 이러한 윤리적 무책임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고, 단순한 설득 이상의 높고 고상한 역할을 강조하는 수사학을 기대했다. 이소크라테스가 우리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말이란 인간 사회의 기반이며 인간이 그의 지혜를 표현하는 수단이어서, 말 없이는 지혜도 분명하게 표현되지 못하고 활발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변증가는 선량한 사람이어야 하고 또한 선량한 사람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 때 말들은 보다 큰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소크라테스의 이상은 키케로(Cicero)에 의해서 전해지고 문예 부흥에 의해서 계승된다.

물론 수단과 목적과의 관계, 기술과 기교가 악용될 가능성은 언제나 수사학의 최대의 취약점이 될 가능성이 지적될 수 있는데 이러한 부정적 요소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Socrates, 469-399 B.C.E.)의 입장이 대변하고 있다. 그는 수사학자들이 진리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수사학자가 자랑하는 기술은 설득의 방편이며, 기만의 수단이며, 안이한 만족감을 낳는 요령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아첨(阿諂)이기에, 결과적으로 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E.)는 그의 수사학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수사학은 변증법의 짝인즉 이 두 연구는 하나의 전체를 나누는 두 개의 부분이 되기에 합당하며 한쪽은 다른 쪽의 정통적인 대등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 논리학에 못지 않은 그 자체의 독자적인 지적 엄밀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는 수사학은 주로 문장을 장식하는 기법이 아니라 변증법과 같은 논의의 기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아주 능란하게 수사학을 옹호한다. 그는 수사학을 새롭게 정의하는데, 수사학의 기능은 설득하는 것이기보다는 “모든 경우에 존재하는 설득의 수단”을 발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 중에서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변증가가 그 자신을 신뢰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연설을 할 때에는 그의 도덕적 품성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훌륭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쉽게 신뢰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문예 부흥기에 키케로(Cicero)와 수사학이 동의어였다는 것은 키케로의 역할이 수사학 발전에 지대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연설만큼 사람의 정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또 없다”(Brutus 193)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말한 것이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수사학에 대한 이분법적 이해를 비판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논의에서 지혜롭게 생각하는 법과 우아하게 말하는 법을 분리했지만 실제로 양자는 밀접하게 결합된 것이다…이것이 분명히 불합리하고 무익하고 고약한 혀와 머리와의 분리를 가져오게 된 근원이며, 여기서 일군의 교사들이 우리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또 다른 일군의 교사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수사학이 이처럼 교육 체계에 있어서나 수행해야 할 주요한 통합적 역할에 관하여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퀸틸리안(Quintilian, A.D. 30-35년경 출생, 사망 시기는 추정 불가능)은 윤리와 웅변의 결합에 치중하여 매우 철저하게 이러한 역할이 규정되고 확립하고 있다. 그는 변론가의 덕성이라는 증거를 최고로 평가했다. 즉 그에 의하면, “전쟁에서 싸운 모든 군인들이 용맹의 미덕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듯이 설사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 훌륭한 웅변을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연설가란 이름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현대에도 적용해야 할 덕목인 동시에 이성봉 목사 같은 설교자들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성서 해석과 설교를 구성했을 것은 자명할 것이다.

이처럼 수사학은 역사와 수많은 평가의 과정을 거치면서 학문의 영역에서 그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 점은 인간은 일상을 통해서 언어를 사용하며 그 언어를 통해서 감동을 받고 그 결과 덕있는 모습으로 변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봉의 성서 해석은 바로 이 점에서 자신의 해석학적 방법론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1-2. 알레고리와 번연의 천로역정

소크라테스가 수사학의 기능을 격하시킨 것과 같이,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에서 자주 적용된 알레고리 역시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다. 영(Young)은 부정적인 알레고리에 대한 평가를 강하게 비판한다. 물론 수사학은 기독교 문학에서 적절하게 적용된 것으로 신약성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을 제공한다. 물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서가 수사학의 조력을 받아 기록되었기 때문에 수사학적인 구성으로 읽어야 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간주한 것은 오리겐이나 어거스틴의 경우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수사학에 대한 기본 전제들을 주목하는 것은 성서를 해석하는 데 상당히 유익한 내용임이 드러난 셈이다. 이처럼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를 분석하는데 우리는 수사학에 대한 관심을 모아 가는 것이 정당하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알레고리이다. 사실 수사학의 범주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그러나 우리가 “천로역정 강화”를 연구하는 데는 알레고리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하겠다.

알레고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역사적, 정치적 알레고리이고, 둘째는 사상의 알레고리이다. 정치적 알레고리는 실제 인물과 행위가 다시 역사적 인물 또는 사건을 지시하는 것을 의미하나, 사상의 알레고리는 실제 인물이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고 플롯은 어떤 교설이나 명제를 전달하는 데 사용된다. 사실 알레고리의 기원은 종교적 언설(言說)을 가장 적합하게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속되는 사상의 알레고리에 사용되는 기법은 덕, 악덕, 심리 상태 및 인물 유형과 같은 추상적 실체들을 의인화(personification)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로역정과 같은 보다 명백한 알레고리에서는 이런 지시가 분명해진다.

천로역정에 사용되는 알레고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面面)을 알아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 사람의 기독도(a Christian)가 전도자(Evangelist)의 경고를 받아들여, 장망성(City of Destruction)에서 탈출해서 천신만고 끝에 천성(Celestial City)으로 가는 것을 그려냄으로 기독교의 구원의 도리를 알레고리 형식으로 제시한다. 천성에 가는 도중에 그 기독도는 신앙(Faithful), 소망(Hopeful), 거대한 절망(Giant Despair)과 같은 인물들을 만나고, 절망의 수렁(Slough of Despond), 고난의 언덕(Hill of Difficulty), 굴욕의 골짜기(Valley of Humiliation),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허영의 시장(Vanity Fair), 희락의 산(Delectable Mountain) 같은 곳을 지나게 된다.

특히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가 성서를 자유 자재로 인용하는 점인데, 이것은 이성봉 목사의 경우에서 마찬가지다. 작품이 시작하는 대목은 그 점을 상기시켜준다: “존 번연은 한 구렁텅이에서 꿈을 꾸었다(구렁텅이는 옥중, 꿈은 인생관을 가리킨). 황막한 광야에서 한 사람이 남루한 옷을 입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집을 등지고 돌아서서 그 책을 읽다가 울며 떨며 슬퍼하며 근심하고 있었다.” 이 대목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서 하란으로 도망하는 장면인 창세기 28:11-12와 일치하고, 이사야 64:6의 인간의 죄된 실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런 알레고리적인 특징들이 천로역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내용들이 된다.

3-1-3.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 분석

이성봉의 성서 해석학을 분석하여 그 틀을 수립하려면 번연의 천로역정에 근거한 “천로역정 강화”를 주목해야 한다. 그가 옥중에서 쓴 천로역정에서 번연은 “우화(allegory) 형태로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보는 그대로의 사람의 한평생을 그려낸다. 그는 인생 행로상의 투쟁, 포부, 약점과 더불어 모든 인간의 영혼의 진로를 묘사한다. 그의 작품의 힘은 그 자신의 단순성에 있다. 각각의 심상(image)과 우화는 한 단순한 인간의 개인적인 인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산문은 그가 흡수한 성서의 고상한 산문에서 얻은 위엄성을 지닌 소박한 말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단순한 시도는 어쩌면 국교회(성공회) 목사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극단적인 수사적 문체에 반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멀간과 데이빈은 17세기 영국의 왕정 복고기의 특징인 과거와의 뚜렷한 분리를 지적하면서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즉 이들은 이 시대를 국가의 인습과 전세대의 종교적 신념에 반역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학사에서 유례가 드문 결정적 시기로 보면서 과거의 잔재가 남은 작품으로 천로역정을 평가한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그 시대의 일반적인 시대 정신인 지식에 대한 공헌과 과학적인 탐구의 새로운 정신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천로역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즉 천로역정은 지식이나 과학보다는 종교에 전념하는 색채가 농후하고 번연의 출신 자체가 당시의 주류에서 벗어난 것도 그렇게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함의 미학 속에 숨어있는 알레고리의 세계는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맥퀸(MacQueen)의 아래의 평가는 우리가 번연이 그리는 알레고리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옛날 비의 종교의 신화와 의식, 플라톤이나 아플레이우스(Apuleius)의 철학적인 알레고리, 그리고 성경의 비유적 해석–이 모든 것에는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비의 종교의 교인에게나, 학자에게나 기독교인들에게나, 첫째로 개인적인 문제로서 상관이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생활 태도가 무엇인가, 영혼이 마지막 가는 곳이 어딘가 하는 것은 성경이나 의식을 충분히 이해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알레고리적으로 글쓰기가 지배적이었던 중세에 있어서 외부 세계에서 내부 세계로 중점이 옮아가는 경향이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지적은 번연의 천로역정을 이해하는 데도 역시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즉 외부 세계로부터 개인의 내적인 문제로 이동하는 알레고리의 새로운 적용은 천로역정을 분석하는 데 요긴하다는 것이다. 사실 알레고리의 세계는 이야기의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 전투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내포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전투보다도 그 싸움의 목표가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하나같이 이런 전투는 신앙인의 한결 같은 모습을 드러내도록 촉구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 역할을 했다. 즉 신약성서의 복음서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흔히 실패하지만, 그것을 반성하고 다시 일어나 예수가 명령한 목표를 위하여 사역하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알레고리의 방법을 통해서 묘사되는 전투의 목표는 예외 없이 인간의 구원이었고,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이야기 형식은 대부분 순례나 탐구였다고 맥퀸은 또한 지적한다. 번연의 이러한 풍부한 상상력과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천로역정이 17세기 영국 문단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지면의 제한으로 “천로역정 강화”를 본 논문에서 모두 분석할 수는 없다. 전체적인 이해는 먼저 그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그 목적에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성봉 목사는 그의 천로역정 강화를 총 5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구성은 번연의 것이 아닌 이성봉 자신의 구분으로 그의 강화를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1장은 “장망성에서 좁은 문까지,” 2장은 “좁은 문에서 미궁까지,” 3장은 “미궁에서 허화시까지,” 4장은 “허화시에서 환락산까지,” 5장은 “환락산에서 천성까지”이다. 천로역정 강화는 번연의 천로역정을 근거로 전개되는데, 무엇이 주류를 형성하는지 모를 정도로 번연의 작품 내용과 이성봉 목사가 설교하는 성서 본문의 내용이 잘 어우러져서 그 묘미를 발휘함으로, 필시 교차 대구법(chiasmus)을 연상하게 한다. 이성봉의 성서 해석학은 최근의 문학비평으로 그 틀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내러티브에서 이야기의 특성을 찾아내서, 그것이 해석자의 의도에 맞게 적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을 가지고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를 분석해 보자.

먼저 천로역정의 서두 부분은 주인공인 한 그리스도인의 죄된 현실 상태를 설명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성봉 목사는 천로역정 강화를 통해서 죄의 결과로 인간이 겪게 되는 내면적 고민을 이사야, 어거스틴, 번연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정확히 지적한다. 이러한 해석은 성서를 정경으로서 완전하게 수용하는 이성봉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한다. 여기서 그는 인간의 죄악이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키고 간격을 만들어냈다는 근원적인 성서적 진리를 제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죄를 슬퍼하라. 죄를 사랑하는 것은 마귀 새끼요, 죄에 빠지는 것은 인간들이요, 죄를 슬퍼하는 것은 성도이다.” 또한 이성봉 목사는 “누더기를 걸친 한 남자가 자기 집에 등을 돌리고 손에는 한 권의 책을 들고 무거운 짐을 지고 서 있는” 기독도가 인간의 참상을 알리는 거울이라고 해석하는 동시에 시대와 사회상을 드러내는 망원경으로서 성서를 이해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주인공 기독도가 처한 고통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죄악의 도시와 군중들 속에서 빠져 나오려면 쉬지 않고 싸워 이겨야 한다. 남보다 뛰어나려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힘이 있어야 하며 고난을 겪고 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은 항상 전진하는 사람이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혼자서 일어나며 먼 곳을 바라보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천로역정 강화”를 통해서 이성봉 목사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주인공인 기독도는 그가 가는 길에서 여러 장애물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을 깨닫는다. 문을 열기도 해야 하고 산에도 올라가서 죽음을 무릅쓰고 캄캄한 골짜기를 건너야 하고 세상의 모든 부패와 부정과 대항하여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은 투옥도 당하고 모진 고문도 받지만 결국에는 죽음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독도가 가는 길에는 희락의 산(Delectable Mountain)과 같은 안식처도 있다. 그 기독도의 동반자는 믿음(Faithful)과 희망(Hopeful) 단 두 사람뿐이다. 순례자의 여행은 외로운 나그네의 길이었다. 이처럼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는 어떤 경험에 대해 단지 우리에게 말하기보다는, 그 경험 자체를 소유하도록 청중에게 끊임없이 호소한다. 즉 그 강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청중에게 단순히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라고 강조한다.

성서를 문학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성서의 경험적인 측면에 민감해지는 것을 의미하듯이,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는 바로 청중들에게 말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소유하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성봉은 성서의 모든 부분을 신학적 명제로 바꾸려는 경향을 철저히 거부한다. 그는 성서를 절대로 증거 자료가 달린 신학 이론의 설명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서에서 예수가 말하고 있지 강의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천로역정 강화”를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교회의 사명”에 대한 강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성서학의 문제가 성서의 문학적인 특징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 즉 “성서가 갖고있는 이야기로서의 특성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라면,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는 성서가 갖는 이야기로서의 특성을 드러내려는 당대 최고의 산물임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아우어바흐는 성서의 내러티브도 일반 문학비평의 원칙들에 의해서 분석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며, 내러티브를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성서의 저자들은 실재를 내러티브적으로 묘사하는데 적절한 표현방식을 필연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는 성서의 내러티브 세계를 새롭게 읽어냄으로 그것이 본래 드러내고자 한 의도를 적확하게 해석하고 있다. 사실 현대 교회의 강단은 너무나 오랜 동안 성서의 “이야기로서의 특성”을 상실했고 문자와 의미 생산에 너무 많이 치중해온 게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는 현대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제공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멋들어지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1. 결론: 이성봉 목사의 성서 해석이 현대 교회에 끼친 영향
20세기의 성서 해석의 일대 전환기를 마련한 것을 지적하려면, 우리는 먼저 성서의 문학적인 읽기에 그 정초를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계몽주의 이후의 사상사와 해석사의 흐름은 역사 비평의 전체적인 적용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의 문학적 읽기는 그런 파편적 성서 읽기에 대한 일격임이 분명했다. 성서의 전체를 읽고 성서가 갖는 작품성을 살피라는 것은 성서가 지금까지 짓눌려온 역사 비평의 굴레를 파쇄(破碎)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야말로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천로역정 강화”를 통해서 살펴본 이성봉의 성서 해석은 한마디로 최근의 문학비평의 적용을 최초로 시도한 것이었다. 그가 적용한 성서 해석 방법은 요즘의 내러티브 비평(narrative criticism)의 적용 점을 많이 담고 있다. 그러므로 정성구 교수가 “특히 그(이성봉)가 죄를 지적할 때는 추상같은 권위로 책망하였는데 듣는 사람이 무색할 정도로 욕설을 썼다”고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정성구 교수는 이성봉 목사가 최근에도 적용되지 못한 내러티브 비평에 입각한 독특한 성서 읽기 방법을 통해서 성서의 근본적인 핵심을 읽어냈을 뿐만 아니라 청중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 다양한 방법을 활용했다는 것은 비판할 것이 아니라 현대의 성서 읽기 방법의 선구자로서 이성봉 목사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늘날의 설교 형태는 이야기 형식을 띤 강해 설교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성봉 목사의 성서 해석이 현대 교회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다름 아닌 이야기 설교의 효시라는 점이다. 교리와 교조적 논조로 일관해 온 성서 해석에 일갈(一喝)을 가한 가히 혁명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이야기 설교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본문의 흐름을 따라 본래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다. 물론 이성봉 목사의 “천로역정 강화”는 성서의 본문에 대한 철저한 주석이나 역사적 탐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라는 하나의 문학적 산물에 의거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성봉의 “천로역정 강화”는 남이 잘 쪄놓은 시루떡을 가지고 자기가 만든 떡인 것처럼 팔아먹는 격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성봉의 이런 노력은 시대적인 상황과 더불어 하나님의 도움을 통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재흥(再興)을 선포한 가히 예언자적이며 혁명적인 결과를 얻은 최고의 설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역사적 허무와 현실적 낙담이 교차하는 어둡던 시절에 이성봉은 적절한 고난의 언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당시의 한국 민중들에게 궁극적으로 승리할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했다. 즉 번연의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기독도의 진리를 향한 최선의 모습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할 하나의 모범을 찾아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서의 진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와 동시에 “천로역정 강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장차 망할 곳을 떠나므로 이성봉의 설교가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적 요소를 내포한 것으로 비판받지만, 우리는 설교란 오히려 그 시대의 반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신학적인 저서보다는 그가 남긴 설교만으로(특히 상황성이 강조되는 설교만으로) 이성봉 목사를 허무주의자 운운하며 평가하는 것은 자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해석하는 설교자가 현실 문제를 보듬지 않는다면, 그(녀)가 어찌 하나님의 말씀의 사도일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이성봉 목사는 본문을 현실에 적절하게 적용한 당대 최고의 성서 해석자임이 분명하고, 이와 동시에 수사학의 세계를 적절하게 이해한 그의 설교는 가히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진정한 모범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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